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히키가야 하치만 (문단 편집) ===== 반론 ===== 유키노와의 관계가 하치만의 실책으로 끝나버린 것은 옳지만 하치만의 행동이 캐붕이라는 의견은 적절하지 않다. 애초에 하치만은 충분히 타인을 능동적으로 도와주려고 하는 인간 유형인데, 1권에서 유미코에게 심하게 압박받는 유이를 도와주려고 할 때도 유미코의 압력에 무심코 겁을 먹었음에도 자신이 왕따가 될 것까지 상정하고 유이를 도와주려고 나서려고 했었고[* 1권 中 그것만으로 유이하가마는 더 위축되어 버린다. 이제 그만 하라고, 귀찮다고. 그걸 보고있는 쪽도 생각해 달라고. 이 뭐같은 분위기 못 참겠어. 너희들 청춘군상극에 관객을 끌어들이지 말란 말이다. 한번 더, 난 있지도 않은 용기를 쥐어 짜 낸다. 어차피 이 이상 미움받을리도 없다. 리스크 제로로 승부를 하는 거라면 그다지 나쁜 이야기도 아니다.]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으며 유이의 사브레를 구하려고 뛰어들었던 인물이 하치만. 심지어 6권 때 하치만은 13권처럼 유키노가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유키노를 돕기 위해 자기희생도 마다하지 않았던 경력이 있다. 유이의 부탁이라는 이유가 있기는 했지만 그것은 결국 하치만이 유키노를 돕기위해 자신을 합리화한 것이고 본심은 그저 유키노를 돕고 싶어서 멋대로 도왔던 것 뿐이다. 게다가 하치만이 거짓말을 했다고 확신할 수 있는 부분은 자신이 직접적으로 변명을 했다는 식으로 말한 하야마와의 대화에서 정도이지 그 외에는 거짓말을 했다 하기엔 부족한 면이 있다.[* 거짓말이라기 보단 자신의 진심을 명확하게 표현하지 못했다는 쪽에 가깝다.] 게다가 하치만은 9권의 진짜를 원한다는 고백 때도 자신이 원하는 것은 '''추악한 자기만족을 강요할 수 있는 관계'''라고 분명히 독백으로 언급했으며, 그 이야기가 13권의 이야기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볼 수 있고 애초에 하치만 본인도 자신이 이런 것이 기분 나쁘다는 자각도 있다고 하며 세간에서 말하는 올바른 관계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고 9권에서 먼저 언급한 바 있다. 하치만은 그 '자기만족'을 얻으려다 실패했을 뿐, 엄연히 유키노를 구하겠다는 부분에선 오히려 이쪽이 예전 권의 복선대로 움직였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하치만의 행동 자체를 비판할 수는 있으나, 자기만족[* 하치만 역시 엄밀히 말해 가장 오류가 적은 표현이라고 한 것이지, 완벽하게 일치하는 답은 아니다.]을 위해 움직였다가 그런 관계를 결과적으로는 잃었다고 캐릭터 붕괴가 되진 않는다. 11권의 유키노의 문제에 관한 문제도 마찬가지. 하치만이 유키노시타의 문제는 자신이 해결해야한다고 한 것은 엄밀히 말해 '''유키노는 판단을 유이에게 맡기고, 유이는 유키노 문제에 대한 답을 내준다'''는 상황을 지적하고, 기만이라고 한 것이다. 아무리 이전의 하치만이 자기기만적인 행동을 종종 보였다지만 타인의 문제에 다른 사람이 도움을 주는 것까지 기만이라고 생각했었다면 봉사부의 의뢰 시스템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으며 정작 하치만은 기만이 싫다고 말해오던 시절에도 타인을 돕는데에 거부감을 느낀 적은 없다. 즉, 유키노가 자기 스스로 해결하려고 할 때, 자신이나 유이가 도와주려고 하는 것은 딱히 모순되지 않는다. 애초에 6권에서도 하치만은 유키노가 도와달라고 한 적이 없음에도[* 물론 유이가 도와주라고 한 것이 명분이 되어준 것은 사실이지만 근본적으로 자신이 돕고싶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4권에서 루미를 도와줬던 것 역시 유키노를 돕고싶었던 것이라고 12권에서 독백으로 고백하기도 한다.] 유키노를 돕는다던가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 그리고 결국 작품에 나온 모든 인물들처럼 하치만은 완벽한 인간이 아니며 그 이전에도 여러번 실수를 저질렸다 13권 이전에도 거짓고백 사건과 유키노가 학생회장이 되는 것을 막는 등 유키노에게 의도하지 않게 상처를 주고 4권에 루미의 처한 상황을 해결하다가 더 고립하게 만들고 히라츠카가 남의 심리는 읽어내는 능력은 뛰어나지만 감정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이건 하치만 뿐만 아니라 유키노도 속마음이 잘 드러나지 않아서 수많은 인물들과 마찰이 빚기도 했으며 특히 4권에서 사고의 관계자라는 것을 숨겨서 싸늘한 관계를 제공 했으며 남의 선택을 의존하는 성향이 강해서 상황에 휘말리기도 한다. 그리고 자신이 자기희생으로 아무도 상처를 입히지 않으려는 시도는 거짓고백 사건과 9권에서 히라츠카가 남에게 상처를 입히지 않은 건 불가능이라고 조언으로 인해 부정당했고 유키노와 서로 진실한 관계를 추구하는 것은 같지만 서로 나아가는 방향과 방식이 다르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때 자기 스타일대로 나가는 경향이 있으며 유키노처럼 대인관계가 서툴고 9권에서 원하는 것을 비록 원하는 것은 형태가 없고 닿을 수 없고 그로 인해 망쳐버리고 말지도 모른다 해도 계속해서 갈망하겠다는 독백을 봤을 때 진실한 관계를 얻기 위해 무리수를 두는 것이고 결국 진실한 관계를 추구하려면 서로 상처를 입히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9권에서 유키노가 구해달라고 애기를 했고 하치만이 "언젠가 구해달라고 약속했으니까"라는 대사를 하며 그동안 자신이 했던 일 때문에 유키노가 힘들어 한 것 같아서 책임을 지고 나서는 것을 보면 유키노를 구하기 위해 무리했다고 할 수 있다. 어쩌면 9권에서 전환점으로 하치만이 여러가지 변화된 모습이 나중에 조짐이 나오면서 독자들에게 당황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그런데 엄밀히 말하면 하치만은 유키노라는 사람에 대해 동경을 하고 있었고, 유키노가 자신이 동경하는 그 모습대로 있어주길 바라는 마음까지 있었단 것을 생각한다면 결과적으로 그렇게 이상한 것도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오죽하면 하치만의 고백 멘트가 '''"너의 인생을 왜곡할 권리를 나에게 줘"'''이겠는가(...)[* 그리고 알다시피 유키노도 하치만을 동경하고 따르는 편이라 유키노 입장에도 하치만과 잘되기를 바라고 있었을 것이다.] 사실 더 간단히 생각해도 될지 모른다. 왜냐하면 이 소설 제목부터가 '''"잘못된 청춘 러브코미디"'''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하치만과 유키노시타의 관계는 겉보기에 연애 과정처럼 보였어도 실제로는 [[공의존]]과 자기만족의 관계일 뿐이었고 그것은 제대로 된 인간관계라 하기 힘든 것이었다. 작중 후반에 두 사람은 문제를 깨달았고, 유키노는 올바른 길을 추구하는 의무감이 있어 이 삐뚤어진 관계를 끝내려 시도했다. 하지만 하치만은 비록 그 관계가 삐뚤어진 것일지라도 자신이 진정 바라는 것임을 깨닫고 있었기 때문에 결국 끝내지 못한다.[* 11권에서 유키노가 유이에게 항복하고 의존하려 했을 때 굳이 막아섰던 것도 실상은 기만 때문이 아니라 유키노와의 특수 관계를 계속 지키고 싶다는 무의식적 반응일 것이다.] 그렇게 두 사람은 엇갈리고 만 것이다. 그런데 사실 유키노도 자신이 망가지는 듯한 위기감에 함몰돼 끝내려 했을 뿐 본심은 그 관계가 싫기는커녕 오히려 좋았다. [* 반대로 [[유이가하마 유이|그녀]]라면, 하치만을 하치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과 달리 자신은 하치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단 것을 신경 썼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두 사람의 특수한 관계성을 [[유이가하마 유이|제3자]]가 깨닫고 있었다. 그 결과 [[유이가하마 유이|제3자]]의 양보를 통해, 하치만은 유키노에게 삐뚤어진 인간 관계라도 책임을 질테니 계속 같이 있고 싶다는 마음을 전했고 유키노도 그 마음에 응한 것이다. 결국 두 사람은 삐뚤어진 관계성을 극복하지 못했지만 그 관계야말로 이 둘의 딱 맞아 떨어지는 궁합이었고, 그렇기에 거기서 자신들만의 행복을 찾을 수 있었다. 그래서 이 삐뚤어졌지만 달콤한 공의존 관계를 서로 책임지며 지속하는 형태로서 연인 관계에 도달한다. 즉, 전인적 관점에서 잘못된 청춘 러브코미디일지라도, 두 사람 사이에서는 결코 버릴 수 없는 그들만의 소중한 관계로 완전히 정착되었다는 이야기다. --이런 사정 때문에 연애적으로 [[유이가하마 유이|제3자]]가 끼어들 여지가 아직 남아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히라츠카 시즈카 선생의 말 대로라면, 이 '''두사람의 관계성은 사랑이 맞다.''' 시즈카는 "삶이란 원래 남에게 상처를 입히는 일이고,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남을 상처입히는 것을 각오하는 일" 이라고 했다. 저 두사람은 한쪽은 의존이고 다른 한쪽은 자기만족이라고 평하며 그것이 올바르지 않다고 말한다. 하지만 어째서 그들은 그것을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하는가? 왜냐하면 '''자기 만족이든 의존이든, 상대를 상처입히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평범한 사랑도 형태가 조금 틀릴 뿐 상대를 상처입히는 일이다.''' 남녀가 상대방이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주지 않도록 속박하는 것이 우리가 이해하는 사랑이며, 그것은 상대를 자신의 기준에 맞추는, 어찌보면 상대를 상처입히는 일이다. 이런 식으로 본다면, 두 사람의 관계성 역시 사랑이 맞다. 하지만 그렇다고 서로가 상처를 주는 모든 관계가 사랑이라는 건 아니다. 그러면 배트맨과 조커도 서로 사랑하는 사이일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관계와 사랑을 구별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히라즈카 시즈카 선생의 말대로라면 '''소거법으로 제거하고 남은 것''' 그리고 그것은 '''여러 이유 뒤에 숨은, 상대와 연관되고 싶은 마음'''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마음인 것이다. 애초에 모든 인간관계는 자기 만족이다. 원칙적으로 자기의 감정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상대방의 마음을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 인간은 개개인의 인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은 서로 감정을 교류할 수 있다. 어떻게? 그저 내가 느끼는 감정을 상대도 똑같이 느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사실은 다를지도 모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기의 생각을 서로에게 강요하는 것이다. 즉, '''애초에 모든 인간관계가 서로간의 일방적인 강요로 완성되는 것이다.''' 그러나 일방적인 강요임을 인식하고서도 부정할 수 없는 함께하고 싶다는 감정, 그것를 서로가 서로에게 가지고 있다고 믿는 것, 혹은 믿음을 강요하는 것. 그것이 감정을 교류하는 일이며, 그것이 곧 사랑이다. 그리고 의존이니 자기만족이니 하지만, 인간관계에서 완벽하게 독립된 관계 역시 불가능하다. 결국 형태 따위는 조금도 중요하지 않으며 중요한 것은 감정인 것이다. 그리고 하치만은 모든 핑계와 두려움을 인정하면서도, 그럼에도 유키노와 연관되고 싶어했기에 떠나가는 그녀를 잡았다. 유키노 역시 의존으로 망가지려는 자신을 느낌에도 불구하고 함께 있고 싶다는 마음으로 하치만을 받아들였다. 앞으로 두 사람은 계속 상처주고 상처받을 것이고, 서로를 끊임없이 의심할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계산의 너머 존재하는 묘사하지 못할 감정이 달라지지 않는 한,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는 연인 관계일 것이다. 그것이 사랑이므로. [* 더군다나, 두 사람은 서로와 함께 하면서 서서히 변할거라고도 짐작할 수 있다. '''인간에게 사랑은 강력한 동기가 되기 때문이다.''' 사랑은 서로를 상처입히는 것이라고 했지만, 상처를 주기에 인간은 변화하고 성장한다. 물론 '''상처가 무조건 성장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특히 역정을 듣거나 비난받는 경우, 사람은 자기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절대 변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랑은 상대에게 상처를 주면, 아파하는 모습을 보며 자신 또한 아파하는 관계이다. 멀어지면 되겠지만 멀어질수도 없다. 함께 있고 싶으니까. 그러한 자기 스스로의 동기를 발견될 때 인간은 변한다. '''외부의 강요가 아닌 내부에서 일어난 감정이 사람을 움직이는 것이다.''' 만약 성처입으면서도 적응하지도 변하지도 않는다면, 그것은 진짜 사랑이 아니었다고 말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